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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석대들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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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장흥 석대들 전적은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남외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전적지로, 2009년 5월 1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9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장흥 석대들 전투:


  • 시기: 1894년 12월 15일
  • 배경: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 주력 부대와는 별개로, 전봉준 등 지도부가 체포된 이후에도 항전을 계속한 전투입니다.
  • 장소: 장흥 석대들은 강진현, 전라병마절도사영, 벽사역, 장흥도호부, 자울재를 잇는 지리적 요충지였습니다.
  • 경과:
  • 1894년 12월 4일, 장흥 일대의 동학농민군은 벽사역을 거쳐 5일 장흥부, 7일 강진현을 함락시켰습니다.
  • 12월 10일에는 강진의 전라병영성까지 함락시켰습니다.
  • 일본군과 관군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강진으로 진격했고, 동학농민군은 장흥 남문 밖과 모정 뒷산 등에 주둔하며 맞섰습니다.
  • 12월 13일, 일본군과 1차 접전이 벌어졌고, 동학농민군은 20여 명의 희생자를 내고 후퇴했습니다.
  • 12월 15일, 장흥의 동학농민군과 자울재를 넘어온 동학농민군은 석대들을 통해 장흥부로 진격했습니다.
  • 일본군과 관군은 후록 주봉과 성모통이 대밭 등에 매복했고, 민보군 수십 명이 동학농민군을 석대들로 유인했습니다.
  • 석대들에서 전투가 시작되었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동학농민군은 큰 피해를 보고 퇴각했습니다.
  • 12월 17일, 옥산리에 재집결한 동학농민군은 최후의 항전을 벌였으나, 백여 명이 사살되고 20여 명이 생포되면서 장흥 일대 동학농민군의 세력은 약화되었습니다.

의의:

  • 동학농민혁명 최대, 최후의 격전지 중 하나입니다.
  • 전봉준 등 지도부 체포 이후에도 항전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 반외세, 반봉건을 지향한 민족, 민주 운동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 정읍 황토현 전적지, 공주 우금치 전적지, 장성 황룡 전적지와 함께 동학농민전쟁 4대 전적지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습니다.


최근에는 장흥 출신 문인들에 의해 석대들 전투가 시와 소설 등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장흥 석대들 전투를 다룬 문학 작품들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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